「카라사와 타카히로」の版間の差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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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카라사와 타카히로는 누구야?===
===원래 카라사와 타카히로는 누구야?===
[[File:Bengoshi.jpg|250px|thumb|소동의 구도]]
[[File:Bengoshi.jpg|250px|thumb|소동의 구도]]
2009년 10월, 2ch [[뭐든지 실황(쥬피터)판]](日: なんでも実況(ジュピター)板, なんJ)(이하 난J)에서 [[하세가와 료타]]라고 하는 소년이 [[야가미 타이치]]라고 하는 고정 핸들 네임(日: [[コテハン]], 코태한)을 붙이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2009년 10월, 2ch [[뭐든지 실황(쥬피터)판]](日: なんでも実況(ジュピター)板, なんJ)(이하 난J)에서 [[하세가와 료타(長谷川亮太)]]라고 하는 소년이 [[야가미 타이치(八神太一)]]라고 하는 고정 핸들 네임(日: コテハン, 코태한)을 붙이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는 고테한을 착용한 채 3년간 거의 매일 [[長谷川亮太の常軌を逸した書き込み|부추김과 중상모략]]을 포함한 [[자기이야기]](日: 自分語り)를 반복함으로써 난J의 수많은 이용자(난J민(民))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친데다, [[パズピー|신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게시판에 남겨놓았기 때문에, 난J민들의 누적된 증오가 폭발하고, [[3月7日|2012년 3월 7일]], 드디어 성명과 소속 고등학교, 진학처가 특정되어 2ch 전체에서도 드물게 보는 대규모의 특정 소동·비방중상이 시작되었다.
그는 고테한을 착용한 채 3년간 거의 매일 [[長谷川亮太の常軌を逸した書き込み|부추김과 중상모략]]을 포함한 [[자기이야기]](日: 自分語り)를 반복함으로써 난J의 수많은 이용자(난J민(民))들에게 엄청난 폐를 끼친데다, [[パズピー|신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게시판에 남겨놓았기 때문에, 난J민들의 누적된 증오가 폭발하고, [[3月7日|2012년 3월 7일]], 드디어 성명과 소속 고등학교, 진학처가 특정되어 2ch 전체에서도 드물게 보는 대규모의 특정 소동·비방중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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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카라사와 타카히로 단체의 화제를 다루기 위한 외부 게시판(카라사와 타카히로 게시판(日: 唐澤貴洋掲示板), 카라케(日: カラケー))이나 [[唐澤貴洋Wiki|해당 Wiki]]가 성립하기에 이르렀다.
끝은 카라사와 타카히로 단체의 화제를 다루기 위한 외부 게시판(카라사와 타카히로 게시판(日: 唐澤貴洋掲示板), 카라케(日: カラケー))이나 [[唐澤貴洋Wiki|해당 Wiki]]가 성립하기에 이르렀다.
또 [[恒心綜合法律事務所|항심종합법률사무소]] 공식 HP내의 프로필이나, [[Twitter]]·[[Facebook]]을 세세하게 체크해 문법의 실수를 들먹임과 동시에, 그것들을 '''「성전」 「성경」 「신탁」 '''등으로 신격화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되어, 가라사와 타카히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恒心教徒|항심교도(恒心敎徒)]]'''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또 [[恒心綜合法律事務所|항심종합법률사무소]] 공식 HP내의 프로필이나, [[Twitter]]·[[Facebook]]을 세세하게 체크해 문법의 실수를 들먹임과 동시에, 그것들을 '''「성전」 「성경」 「신탁」 '''등으로 신격화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되어, 가라사와 타카히로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恒心教徒|항심교도(恒心敎徒)]]'''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단적으로 말하면
*똥 코태한에 대한 3년치 원한에 더하여, 몰상식하고 무능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담당 변호사
*일본에서는 IP공개만은 인터넷 서비스 프로바이더에 경고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실제의 손해도 없는 것이 발각되어 버렸다
*자신에 대한 비방 중상은 공개 청구하는데, 하세가와 료타에 대한 비방 중상은 방치하고, 의뢰인을 버렸다고 받아들여졌다
*카라사와 타카히로에 대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반응을 보고 싶다
*때를 같이해서 일어나고 있던 [[한여름 밤의 음몽]] 붐이나, 2ch정리 블로그 인용원의 난J시프트([[アフィ・ステマ騒動]]도 참조)의 영향을 받아 소동의 무대인 난J의 문화가 인터넷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얼굴 사진 대신이 [[Photo.jpg|소재로 하기 쉬운 일러스트]]였던 점, 문장이 괴멸적이었던 점 등 카라사와 타카히로 본인이 너무 재미있었던 점, 비밀 많은 점이 오히려 흥미를 끌면서 [[事実追求路線|사실 추구 노선]]이 발전
*예술 노선이나 문예 노선, 해당 Wiki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일련의 소동·비방 중상이 일종의 컨텐츠가 되어 버렸다
*하세가와 료타가 소식불명이 된 후나 카라사와 타카히로가 활동을 저하시켰을 때도, 소동의 장기화의 영향으로 발굴된 [[高橋嘉之|그의 의뢰인]]이나 [[藤原太一|전직 교도]], [[森園祐一|교도에게 싸움을 걸어온 넷카마]]를 [[外伝三本糞|필두]]로 한 [[外伝主人公|외전 주인공]]들의 존재가 소동의 유지에 공헌
2012년 3월 28일 소동이 시작된 후 {{年数|2012|3|2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비방 중상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는 커녕 여러 가지 [[路線|수법]]의 개발이나 사사건건 행해지는 나쁜 [[감자]]의 암약 등으로 오히려 악화되고 있어 유감스럽게도 전혀 수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변호사로서의 자세===
요즘 수임 후의 장기에 걸친 사건 방치가 일본 법조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어 변호사회에 징계 청구되어 처분을 받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이런 종류의 변호사는 착수금을 원하기 때문에, 착수금 금액을 일부러 저렴하게 하는 경향이 있어, 법조 관계에 서툰 일반인을 먹잇감으로 삼고 있으며, 카라사와 타카히로 또한 '''착수금만 받고 의뢰를 방치하는 변호사의 전형이다'''.
실제로 [[ステロイド患者|자신의 테리토리 밖이고]] [[石塚由有|승소 가능성이 없는 안건]]이라도 일단 수임 계약하고 착수금을 받는 데 전력투구하는 변호사다.
게다가 카라사와 타카히로의 [[唐澤貴洋の依頼人一覧|의뢰인]]은 수상한 [[立花孝志|개인]]·[[サイモントン療法協会|단체]]가 많아, 대략 약자의 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변호사이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カテゴリ:布教用ページ|여기]]를 참조.'''


==참고(參考)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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